이시가와의『골무』
 

발명을 사랑하는 여러분!
어머니께서 바느질 할때 주로 사용하시는 골무 아시죠?
일본의 이시가와는 아내가 바느질하면서 너무 괴로워하는 것을 보고 자신이 다니던 피혁공장에서 남는 고무를 가져와서 골무라는 것을 발명하였다. 
발상지는 멕시코. AD 2세기경 마야문명에서부터 유래되었다. 인간은 먹고 마시는것 이외에도 항상 무언가를 씹고 자하는 충동이 있으며 이러한 습관은 기원전 부터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더 이상의 골무관련 특허는 없어.'라고 생각한 그는 그 다음 골무에 관한 아이디어를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날 고베시즈라는 사람이 골무의 안쪽에 브이자(V)형 자국을 내고 그 가운데에 안전면도날을 넣어, 상처를 내지 않고 실을 끊을 수 있도록 하는 골무의 실용신안을 등록받았다.
그리고 또 얼마 지나서 치카에 카즈오라는 사람이 비닐파이프를 끊어서 골무를 만드는 법을 발명하였다. 이 골무는 투명한 코발트색으로 아름다우면서도 값이 무척 쌌으며 작업속도도 훨씬 빨랐다.

이러한 일들로 인해 발명이란 끝이 없는 것임을 새삼 깨달은 골무의 발명가 이시가와는 계속적으로 골무개발에 전념하여 50여 건이 넘는 골무를 개발하였고 “골무의 대부”라는 칭송을 진짜로 들을 수 있게 되었다 




아내의 바느질을 보고 불편함에서 편리하게 도와줄 수 있도록 발명을 하게 되었네요.


골무에 대한 특허는 더 없을 거라고 하지만 계속 나온것처럼 발명이란 무궁무진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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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우댕글

조셉의 『철사가시』
 

발명을 사랑하는 여러분!
장미꽃 아시죠?
최근에 우리 나라와 독일의 장미상표권 특허 소송에서 우리가 승리했다. 독일의 코르데스 죄네 로젠슐렌사가 한국화훼협회를 상대로 낸 상표등록 무효심결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특허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로젠슐렌사가 97년 3월 국내 특허청에 출원, 상표로 등록한 ‘레드 산드라’는 87년 한국에 도입돼 현재 절화 장미 시장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널리 보급된 품종"이라며 "장미 시장에서 이미 장미의 한 품종을 뜻하는 일반적 명칭으로 사용돼 온 만큼 특정 상표로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장미꽃 예쁘죠?
그리고 장미꽃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선물하는 꽃으로 유명하죠?
참! 장미를 왜 사랑하는 사람에게 주는지 아세요?
제가 그 사연 있는 이야기를 알려드릴께요.
 

어느 마을에 아버지 없는 한 소녀와 어머니가 살고 있었습니다.
소녀와 어머니 집 주위에는 가시나무가 많았고 점점 늘어나고 있었지요.
처음엔 가시나무가 없었는데..... 
소녀가 자신을 버린 아버지를 찾겠다고 말할 때마다 
어머니는 집 주위에 가시나무를 심었던거예요....

그리고 소녀와 어머니 사이는 점점 나빠져 소녀는 꿈속에서도
어머니가 죽어 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는 이름 모를 병으로 죽고 말았고...
소녀는 그 때서야 자신이 어머니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지요....
그리고 어머니를 묻게 되었어요.. 
그런데 문제가 생긴 것은.......
그 마을에는 죽은 사람이 아끼던 꽃을 죽은 사람의 옆에 놓아야 
그 사람이 그 꽃으로 태어난다고 믿었는데 어머니가 아끼시는 건.. 
그 가시나무 뿐 이었어요...
어머니가 가시나무로 태어난다는 건 너무나 슬픈 일이었지요.. 
그리고 가시나무는 꽃이 없었어요.. 소녀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어요.... 
"가시나무야, 내 몸을 파고 지나가 나의 피로 꽃을 피우렴..!" 
그 순간 가시나무는 소녀의 몸을 파고 지나갔고..
소녀의 새빨간 피로 꽃을 피웠지요..
소녀는 죽음을 맞이했고.....
그래서 가시나무에 핀 붉은 장미는 
자신의 목숨을 바쳐서 사랑하는 사람에게 만 주는 거랍니다.
흐흐흐---- 이 소녀의 효심 정말 아름답죠!
이제 조금이해 하셨죠?
그러나 장미 이야기는 보너스로 드린 것이었어요!

그런데 이제부터 이 장미가시를 보고 억만장자가 되버린 소년!
죠셉의 철사가시 발명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호호호
13세의 어린 나이로 철조망을 발명하여, 하나의 발명품으로 가장 많은 돈과 명예를 얻은 발명가 조셉. 그가 특허권이 끝날 때까지 벌어들인 돈은, 미국의 유명한 계리사 11명이 1년 동안 달라붙어 일했어도 다 계산하지 못한 엄청난 금액이었다. 또한 1918년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날 때까지 사용된 조셉의 철사가시(철조망)는 이 전쟁에 사용된 포탄보다 많은 양이었다고 한다.
미국의 한 가난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초등학교를 졸업한 조셉은 집안 형편 때문에 중학교에 진학할 수가 없었다. 자신의 처지를 깨달은 그는 일찍부터 목장에 취직하여 목축업으로 성공해 보겠다는 결심을 하였다.
목동이 된 조셉은 목장 안에서 양떼를 보살피며 양들이 울타리 너머로 도망가지 못하도록 지키는 일을 맡았다. 양들이 낮 동안 풀을 뜯어먹고 있을 때에는 비교적 한가해서 책을 읽거나 미래의 꿈을 설계해 보기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날도 조셉은 한가한 시간을 이용해 책을 읽고 있는데 갑자기 다급한 주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셉! 도대체 넌 뭣하고 있는 거냐? 어서 일어나 저길 좀 보라!”
주인이 가리키는 곳을 바라본 조셉은 정신이 아찔했다. 몇 마리의 양들이 울타리를 넘어가 남의 농작물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제야 그는 목장의 울타리가 철사를 빨랫줄 모양으로 연결시키거나 말뚝을 박은 허술한 것임에 신경이 미쳤다.
조셉이 울타리를 따라 돌며 감시했으나 양들은 이웃의 농작물을 망쳐놓기 일쑤였다. 그는 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생각하며 밤낮으로 고심했다.

발명을 사랑하는 여러분!
죠셉은 고민을 해결 할 수 있었을 까요?
그러던 중 조셉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양들은 가시가 있는 장미넝쿨 쪽을 피해, 막대기나 철사 울타리만을 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조셉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림 왕연중의 발명이야기에서 발췌]

그날부터 조셉은 장미넝쿨을 조금씩 잘라 울타리에 매었다. 한동안 양들은 체념하는 듯했다. 그러나 곧 꾀가 생긴 양들은 머리를 비벼 넝쿨을 떨어뜨리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번번이 그것을 고치기는 귀찮은 일이었다. 순간 조셉의 머리엔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맞아! 울타리에도 가시넝쿨처럼 철사로 가시를 만들어 붙이면 되겠구나!’
그는 즉시 아버지의 대장간에 가서 뺀 찌와 철사를 구해 왔다. 그리고 나서 울타리에 철사 토막을 넣어 새끼처럼 꼬아 붙이는 작업을 시작했다. 완성된 철사가시는 가시넝쿨보다 수명도 훨씬 길고 그 끝도 몇 배나 예리한 것이었다. 조셉은 이제 편히 책을 읽을 수 있게 된 것만 기뻐 어쩔 줄 몰랐다.
다음 날 아침, 목장을 살피러 나온 주인은 울타리의 철사가시를 보자 깜짝 놀랐다.
“조셉! 이것 네가 만든 거냐?”
“예, 주인님!”
“조셉, 정말 대단한 발명을 했구나. 빨리 특허출원을 해야겠다.”
조셉은 목장 주인의 도움으로 특허출원을 하고 그 후 목장 관리인이 되었다. 그는 수많은 인부들을 지도하여 철사가시를 만들어 울타리에 둘러쳤다. 철사가시 울타리는 곧 사방으로 소문이 퍼졌다. 지방신문에 이어 중앙신문에서까지 철사가시 울타리를 특집으로 보도했다.
1년 후, 드디어 조셉의 철사가시는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국경선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엄청난 양의 철사가시를 구입해 갔다. 조셉은 물론 그의 조국인 미국도 엄청난 외화를 벌어들였다. 철사가시의 생산, 판매 및 특허권 사용료 수입은 실로 엄청난 금액이었다.

발명 가족여러분! 
여러분은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 찾아보셨어요?
그것을 관찰하는 힘!
바로 그것이 훌륭한 발명을 하는 씨앗이랍니다.




【확인 퀴즈1 】최근 우리 나라가 독일과의 장미꽃 이름 분쟁에서 승리하였는데 그 장미꽃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레드 산드라)

【확인 퀴즈2 】초등학교를 졸업한 조셉은 중학교에 진학할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나 집안형편이 어려워서)

Posted by 와우댕글
 섬유유리 손잡이 (ST2170)를 가진 고무 망치

주먹도끼로부터 발전한 망치는 기원전 50만 년에서 30만년 경에 그 원형을 갖추게 된다. 즉, 돌로 된 망치머리에 구멍을 뚫어 자루에 고정시킨 형태이다.
기원전 1세기경 철기시대가 시작되면서부터는 제련작업에 망치가 사용됨으로써 그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달구어진 쇳덩어리에 집중적으로 망치질을 가해 광재를 제거하고 단련을 하여 원하는 형태를 만들었다. 다량의 단조품에 대한 수요가 점점 늘어나자 단조공정도 기계화되기 시작했다.
1104년 스페인 북부의 카탈로니아  지방에 대장간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 이 대장간에는 캠축을 이용한 수차가 동력해머를 작동시켰다. 수력을 이용한 대장간은 19세기까지 육중한 기계부품을 제작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1839년에 영국의 기술자 네이즈미스가 증기해머를 발명했고, 이로써 거대한 부품의 제작이 가능해졌다. 광산업계에는 수백 년 동안 채굴용 착암기가 주요한 도구로 사용되었다.
프랑스 기술자 제르맹 소메예는 1863년에 공기압축기를 발명했으며, 이후 독일 기술자 보베르트 보쉬는 1917년 최초의 콘크리트용 해머드릴을 개발했다.

큰 힘을 필요로 하여 만들어진 망치가 여러 분야에 응용되기 시작하면서 다양한 발명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망치는 현재에도 많이 쓰이고 있는 공구이기도 하죠. 적은 힘을 들이지만 대신 이동거리를 늘려 가하는 힘을 강하게 하는 간단한 원리로요.
이제는 못을 박을 수 있도록 하면서 잘못박힌 못도 쉽게 뺄 수 있도록 하는 장도리도 쓰이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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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도끼는 인류최초의 도구로 추정된다. 이미 250만년전부터 육체적인 힘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돌맹이를 손에 들고 도구로 사용했다. 약 150만년전 호모에렉투스는 부싯돌로 조야한 형태의 석기를 만들어 두드리고, 자르고, 긁는데 사용했으며 동식물의 가죽과 껍질을 벗기고 땅을 파는 데 사용했다.

일정한 형태의 주먹도끼가 만들어진건 기원전 60만년 경부터이다. 기원전 50만년에서 30만년 사이에 등장한 호모 사피엔스는 주먹도끼에 구멍을 뚫어 자루를 달아서 사용하기 시작했고, 이로써 주먹도끼의 사용범위도 넓어졌다. 자루가 달린 주먹도끼는 운동량을 증폭시켰을 뿐만아니라, 타격이 빗나갈때에도 신체적 부상을 완화시킬 수 있었다. 이 시기에 주먹도끼는 물건을 쪼개는 '도끼'와 물리적 타격을 가하는 '망치'의 형태로 각기 분리되어 발전했다.

처음엔 주변에 있는 물건이었던 돌만을 사용하다가 점차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게되었다는게 발명품도 쓰면서 다양한 용도가 생기고 점차 분리되어 나가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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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와우댕글
흔히 때수건이라 불리는 이태리 타올은 대한민국의 김필곤에 의해 발명된, 목욕할 때 쓰는 때를 미는 수건이다. 부산에서 직물공장을 운영하던 그는 비스코스 레이온 원단을 이용하여 때를 미는 데 적합한 수건을 만들어 냈다. 이전에는 수건을 말아 쓰거나 돌을 안에 넣어 감아 사용하였으나 이태리 타올의 거친 질감은 한국인의 목욕습관에 알맞게 때를 미는 데 잘 맞았다. 대중목욕탕이나 가정에서 많이 쓰인다. 이태리란 이름이 붙게 된 이유는 사용한 원단이 이탈리아제였기 때문으로 정작 이탈리아에서는 사용하지 않는다.

이태리타월은 1967년도에 부산 초읍동 현 창곡시장자리에 한일직물(대표 김원조)이라는 섬유회사에서 처음 개발 되어 만들어졌다. '이태리 타올'로 불리게 된 것은 비스코스라는 실이 이태리에서 생산되는 것을 수입하여 국내에서 연사 및 직조과정을 거쳐 생산되었기 때문이었다. 참고로 당시 한일직물에서 타월을 짜던 기계는 일제 다이마루라는 기계였다. 또한 개발자라고 알려진 부산의 아리랑관광호텔의 회장(김필곤/ 4년 전 작고/한일직물의대표와 친척관계))은 원래 부산 수정동에서 놋그릇 장사하던 사람이었으나 이태리타월이 개발된 후 그 영업을 맡아 큰 수익을 벌어들였다. 그 후 원개발자(한일직물의 대표)가 다른 사업으로 부도가 나서 지병 등의 이유로 이태리타월 생산을 하지않고 오랫동안 연락이 끊기자 죽은것으로 생각하고 그 자신이 개발자라고 각종 방송및 언론에 밝혔으나 실제 섬유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었다고 한다. 원개발자는 2011년 9월22일에 작고하였다.

1962년 대한민국 특허청에 실용신안권으로 등록되었으며 1976년에 권리가 소멸되어 현재는 누구나 만들 수 있다. 특히 이 제품은 한국에서 특허를 이용하여 유사제품 생산자로부터 법적 보호를 받게 되어 발명자가 큰 이윤을 얻게 된 대표적인 성공사례 중에 하나로 알려져 있다.

출처 위키백과

이태리 타올이라길래 이탈리아에서 수입한 타올인 줄 알았는데 재료가 이탈리아산이라 붙인 이름이었군요. 이탈리아에서 직물을 수입해서 짜는 기계는 일제였다니 그 당시의 기술이 발달하지 못해서 수입을 해서 쓰고 있었네여.


Posted by 와우댕글
인류 최고의 발명품으로 1위로 선정되었던 주판에 대한 내용입니다.


사진. 중국 주판/위키피디아

내용
여러분들은 전자계산기를 사용해 본 적이 있나요? 스마트폰에도 계산기 어플이 있지요. 
  전자계산기를 사용하면 복잡하고 어려운 계산도 금방 해낼 수 있어요. 그렇다면 옛날 사람들은 전자계산기도 없는데 어떻게 계산을 할 수 있었을까요? 바로 ‘주판(籌板)’이라는 훌륭한 계산기가 있었기 때문이랍니다. 
  주판은 중국 원나라 시대에 발명된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오래전에 생겼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지요. 주판의 중국식 이름은 ‘수안판(算?)’이고 전 세계적으로 널리 사용되었어요.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떠돌이 장사꾼에서부터 상인, 회계원, 은행가, 호텔 경영자, 심지어는 수학자와 천문학자에 이르기까지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주판을 애용했어요. 
  처음 만들어진 주판은 윗부분에 한 개의 주판알이 있고, 아랫부분에 네 개의 주판알이 있었어요. 주판알은 지금처럼 기둥에 꽂힌 것이 아니라 홈 안에 들어 있었다고 해요. 그 후에 만든 주판은 지금도 중국에서 사용되고 있는데, 대개 단단한 나무로 만들어졌고 가는 막대기인 뀀대로 이루어져 있어요. 뀀대마다 타원형인 주판알 7개가 꿰어져 있지요. 사진 1과 같이 가름대를 기준으로 윗부분에 주판알 두 개, 아랫부분에는 주판알이 다섯 개가 있어요. 
  주판의 일본식 이름은 ‘소로반(算?)’이에요. 일본인들도 주판을 주된 계산 도구로 사용했어요. 그들은 이 도구를 초등학생이나 행상 혹은 전문 상인이라면 반드시 지녀야 할 필수품으로 생각했어요.
  우리나라에 주판이 도입된 시기는 조선 중기쯤으로 추정되지만, 그 이전에 사용하던 ‘산목(算木)’을 계속해서 사용하다가 조선 시대 말에 이르러 상업이 발전하면서 주판을 더 많이 사용하게 되었어요. 조선말에 사용한 주판은 중국의 주판처럼 윗부분에 두 개의 알이 있는 것이었는데 점차 윗부분의 알이 한 개인 주판으로 바뀌었어요. 그 후 주판은 1980년대까지 사용되었는데 전자계산기와 컴퓨터가 발전하면서 현재는 거의 사용되지 않고 있지요.
  서양에도 주판이 있었어요. 
  옛날 이집트, 그리스 등지에서도 주판을 사용했었고, 특히 로마는 주판 사용법이 발달해서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주판을 많이 가르쳤다고 해요. 로마의 회계원들은 자신들의 ‘업무 형태’에 맞게 휴대용 계산기인 ‘아바크(Abaque)’를 사용했어요. 로마식 주판 ‘아바크’는 금으로 만든 판에 홈을 파서 그 위를 구슬이 움직이도록 만들어 놓은 계산도구예요. 윗부분에 있는 구슬 하나가 5를 나타내고, 아랫부분에 있는 네 개의 구슬이 각각 1을 나타내지요. 이 주판 하나로 9,999,999까지 나타낼 수 있었답니다. 오른쪽 맨 끝에 있는 두 줄은 분수를 나타낼 때 쓰였어요. 옛날 로마 주판은 최초의 중국 주판과 비슷한 점이 많았어요.
  러시아 주판 ‘스초티(Cчёты)’는 중국의 주판과는 개념이 약간 달라요. 우리나라의 주판을 세로로 세워놓은 듯한 모양으로 한 줄에 주판알이 10개씩 있고, 가운데 주판알 2개만 색깔이 달라요. 덧셈을 할 때는 왼쪽으로 알을 옮겨놓아요. 10알이 모두 왼쪽으로 옮겨지면 윗줄의 한 알을 왼쪽으로 옮기고 아래 10알은 다시 오른쪽으로 옮겨요. 어느 줄인가의 왼쪽에 주판알이 없을 때 뺄셈을 하려면, 윗줄에서 알을 하나 오른쪽으로 돌려보내고 그 행의 10알을 왼쪽으로 옮겨놓으면 되요. 말로 설명하니 조금 어렵게 느껴지네요.
  주판은 수를 나타내기가 매우 간편해요. 그래서 이 도구를 사용하여 사칙연산을 하는 일은 별로 복잡하지 않았어요. 그러나 주판에는 몇 가지 불편한 점도 있어요. 매우 오랫동안 지속적인 연습을 해야 하고, 계산을 할 때 약간의 오류만 있어도 계산 전부를 다시 해야 했지요. 하지만 불편한 점보다는 유용하고 편리한 점이 더 많았기 때문에 오랫동안 널리 사용되었답니다.


주판(珠板)의 역사 

고대 중국의 수판셈은 주산(珠算)이라고도 한다. 주산은 주판(珠板) 또는 산판(算板)이라는 도구를 이용하여 가감승제(加減乘除)의 계산을 하는 것이다. 주판의 기원은 고대 바빌로니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원시적인 형태의 수판은 기원전 3000년경 바빌로니아인들에 의해 발명된 것으로 평평한 판 위에 뿌려 놓은 모래 위에 선을 그은 다음, 그어진 선위에 작은 돌멩이를 늘어놓은 모양이었다. 

기원전 600년경 그리스와 로마 등에서 판자 위에 여러 개의 줄을 긋고, 그 줄 위에 바둑돌을 놓아 계산하였는데, 이것을 선수판(線數板)이라고 했다. 선수판에서 줄은 자릿수를 나타내는데, 한 줄 위에 바둑돌을 여러 개 놓을 수 있는 것이 오늘날의 수판과 다른 점이다. 그 후 아라비아숫자가 보급되어 일반적으로 필산(筆算)을 행하게 되었고, 선수판은 유럽에서 17세기 말에는 사라지고 말았다. 

오늘날과 비슷한 주판은 기원전 500년경에야 중국에서 쓰이기 시작했다. 이 때, 중국으로 전파된 주판은 획기적으로 개량이 된 것이었다. 중국인들은 대나무를 이용하여 주판을 만들고 주판을 상하로 구분하여 윗부분은 하늘, 아랫부분은 땅으로 부르고 하늘에는 주판알이 2개, 땅에는 주판알이 5개가 되도록 배치하였다. 또 하늘의 알은 5를, 땅의 알은 각각 1을 나타내도록 하였다. 

중국의 수판셈이 우리 나라에 도입된 연대는 정확히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우리 나라에서는 수판셈이 도입되기 전에 지름 약 0.3cm, 길이 20cm의 대나무 토막을 써서 하는 죽산(竹算)을 사용했다. 이후 우리 나라에서 수판셈이 활발히 보급된 것은 1920년, 조선총독부 내에 ‘조선주산보급회’가 설립된 후부터이다. 그리고 1932년부터 윗알이 1개, 아래알이 4개인 수판을 사용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일본에서 개량된 모양이다. 

현재 우리 나라에서는 윗알이 1개, 아래알이 4개 있는 주판이 주로 사용되는데, 이전에 사용한 윗알이 1개, 아래알이 5개인 것도 있다. 주판은 1980~1990년 초까지 많이 사용되었지만, 지금은 전자계산기가 발달되고 주판으로 계산하기에 시간이 오래 걸리므로 점점 사라지고 있다.



출처- 스마트 과학관 , 눈높이 대백과

개념적인 수를 나타내고 계산할 수 있게 해준 도구네요. 간단한 세아림으로 복잡한 계산까지 처리할 수 있었다고 하네요. 요즘은 전자계산기가 발달하고 엑셀의 계산기능이 있어서 주로 사용하지 않지만 계산의 과정을 파악할 필요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암산 천재라고해서 놀라운 대회 스타킹에서 본 적이 있었습니다. 매우 큰 숫자들을 빠른 시간안에 암산을 하였는데 그 때 이 사람이 머릿속으로 암산한 방법이 바로 주판을 연상하여 셈하여 계산하였다고 했습니다. 옛날 사람들의 지혜가 집약되있는 발명품같습니다.


Posted by 와우댕글



영국의 일간 신문 인디펜던트가 선정한 세상을 바꾼 발명품들입니다. 지금에 와서 보면 당연했던, 시대가 지나가서 안쓰는 물건들이 많이 보이는 것 같네요.


Posted by 와우댕글